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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  (1960. 10 20/음)

   강릉 성덕초등 졸

   강릉 중학교 졸

   강릉상업고등학교 졸

   경북안동대 졸

   침례신학대학 대학원(Mdiv)

   영어번역 프리랜서

  강릉 가정폭력상담소 상담팀장

  주문진 철벽부대(58연대. 주향교회) 담임목사

  강릉 전원교회 담임목사

   

김향숙(1962. 9. 22 /음)

    산포초등 졸

    1987, 중,고 검정고시 합격

    1989 침례신학대학입학

    (기독교 교육 전공/ 94년졸) 

   현. 강릉여성의전화 가장폭력 상담소 소장

 

김유진 (1991. 9 29/양)

     관동중학교 3학년  재학

     受賞經歷 : 嶺東christian新聞主催

                    寫生大會  奬勵賞 入賞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에 응아리들을

힌 백색 눈물로 뿜어 내누나.

 

모두가 푸르름의 고함소리로

싹을 틔워 생명을 드러낼 새

너만

뜨거운 심장의 맥박을 감추며

차마 보일새라

투명의 눈물로 감격의 포옹을 하누나.

 

다 못다 녹은

대관령의 눈 바람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 때

참다 못한, 너에 심장의 복받침이

훈풍의 교향악을 이루누나.

 

4월을 준비하는

이 3월의 봄 바람은

너의 숨결, 너의 노래였구나.

 

아 !

세상이 감당 못할 너의 순결함이여.

이제, 뜨거움으로 피어나거라

 

아 !   3월의 목련아

        3월의 목련아

 

 목회 10년,

결혼 10년.

흠없는 목회자로 세워지기만을 위해 기도하며

예수님 섬기듯 못난 나(형남)를 섬겨준

사랑하는 아내 향숙 자매에게 이 시를 드림니다

 

    

 

 

 

 

교회는 거룩합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에 주인이십니다.

 

교회는 약하지 않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영원한 것을 공급해 주는 샘터입니다.

 

교회는 내가 이 끌고 갈 수 있을 만큼 작지 않습니다.

 

교회가 있습에 감사합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내가 섬겨야 할 교회가 있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오랜만에 꽃혀진, 강대상 백합 향기가 좋습니다.

좀 더 오래 두고 보기 위해,

수반 위에 얼음 몇 개 띄워 놓으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인 1976년 5월 마지막 주에 강릉 중암감리교회에 출석하면서 교회라는 생활 속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교회라는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대학생 선교회(HCCC)에서 구체적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또한 79년, 개척하여 출발하는 강릉의 동부침례교회에서, 신앙의 삶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대학 학창시절은, 교회생활보다, 성경과 위인들의 서적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공부원 시험 준비를 해왔지만, 시험에 낙방하고 결정하게 된 것이 신학임니다.

그 때까지,  목회자의 신권적 리더쉽에 강한 거부감을 가져왔기에,   목회자로서의 Calling에는 응답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길이 섬기는 길이라면, 필요한 곳에 쓰임받을 수 있겠다는, 지극히 소극적 각오로 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무책임한 출발이었지만,  신학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몇가지 소원들은, 지금도 변함없는 목회의 비젼으로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원동력이 될 때가 많습니다.

1988 신학대학원 입학식을 앞두고, 학교에 제출하였던 신학생의 각오외 결의들을 이 지면에 원본 그대로 옮겨 봅니다.

 

                          

1988년 2월            

 (신학대학원 입학식을 앞두고 학교에 제출했던 소명론)            

 

현대는 교회와 신학의 홍수 속에 살고 있음을 봅니다. 만나는 신앙인 마다 요즈음 교회 운운하며 자신의 신앙관을 주장하며 관철 시킬려고 합니다. 또한 잡지책마다 많은 승리의 간증이 실려지고 있지만 개인 사생활까지 아는 친우들 중에 자신이 본 받고 싶은 신앙인이 드물고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만족하는 젊은 사람도 적음을 관찰하게 됩니다.

여러 교회 밖 운동(O.C.M/ outsides church movement)들이 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 운동이 교회 내에까지 튼튼히 접목되지 못하고 있는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같이 오늘날 교회에서 열매맺지 못하는  많은 신앙인들이 이 불만족을 해결해 줄 선지자적 초인을 기대하지만 그것이 평신도와 목회자들의 간격만 넓히게 했고 신앙을 과장하여 자기 위선 속에 빠지게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신학원생으로 입학식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소원을 주신  몇 가지를 적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나의 사역 지는 고향에서부터 시작하여야겠다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 친구가 있는 곳에서 자신의 신앙을 인정받지 못할 때, 낮선 곳에서 낮선 사람과의 목자의 직분은 잘되면 자기 도취에 빠지고(행14:15,18) 못하면 자기 위선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 그리고 같이 취업을 위해 공부하던 친구부터 복음을 전하여 나갈 것이며, 강단에서는 목사요, 사석에서는 자녀로서 선후배로서 친구로서 모범이 되지 못하는 목자는 같은 교회 내에서 목사 부목사가 누구 큰 자냐 다투면서 평신도에게는 용서하며 사랑하고 관용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젊은 목회자가 완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선배 친구들의 꾸중과 조언 및 기도로서 시작할 때 함께 성장시키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둘째, 교회(회중)속에 역사 하시는 성령의 움직임을 보기 원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뛰어난 능력으로 이끌려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의 목사에게 신탁되어져 운행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다 주님의 사명을 위탁받은 왕 같은 제사장이며 주님의 자녀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짧은 기간 전문적 성경 지식을 습득한 종교 지도자보다 학식과 인격 모든 면에서 월등한 많은 평신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무장된 분일수록 개인은 강하지만 교회에 부적응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최대의 힘이 쓰여지지 않는 것처럼 관찰되어집니다.

교회의 비밀은 개인에 있지 않고 회중에 있습니다. 세상은 사랑이 식어지고 이기적이 될수록 먼저 믿는 자들은 모이기에 힘쓰고 사랑하고 관용하는 법을 배우라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필요한 곳은 정치보다 교회가 아닐까요?  즉 나의 유능함으로 교회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더 유능한 친구 선배들과 함께 연합하는 것과 섬기는 것을 배우기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깊이 있는 신학적 체계를 갖추는 일입니다.

일본을 지칭하여 말하기를 신앙의 불모지라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일본 평신도 및 신학자들의 소설 및 신앙 서적들이 다량으로 번역되어 나오는 것을 볼 때. 한국은 교회의 규모와 양만으로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고 허풍치는 것이 아닌가 반문해 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를 들어 많은 외국 선교사들이 말하기를 급성장한 만큼 급 후퇴할 수 있는 요인들을 갖고 있다고 염려합니다. 조직과 운동력보다 깊은 영혼의 호소력을 가지고 뿌리 있는 신앙을 가르칠 수 있는 목자로서 자질을 갖추기 원합니다.

 

앞으로 3년의 대학원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떠한 방향으로 훈련시킬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 일을 하도록 소원을 주신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성장시키실 것을 확신합니다.

 

 

                                                                              1988년 2월  18일

 

 

 

  

 

규칙과 율법,

인간 관계의 에티켓으로

비싼 화장을 하고 살지만

마음의 문은 점점 천해져 간다.

 

하나님,

당신의 능력으로 규칙을 세우게 하소서,

나의 경건의 기준으로 모양만 만들어 가는 율법의 삶이 아니라

내주하는 성령의 능력에 따라 행하게 하시고

쉼을 주는 자가 되게 하소서

 

이것을 위해 훈련케 하시는

주님께 순종합니다.

 

갈급한 양들에게 강요하는 헌신의 요구보다

피곤한 이들에게

주님의 평강을 끼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이것을 준비하는데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이 기간을 주의 것으로 당신께서 사용하소서.

 

 

                                              1988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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